더러워서 내가 꼭 성공한다
우리 어머니가 낼 모레면 60인데 아직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신다.
아버지가 국립대 교수인데 혼자서 친가 친척들 뒷바라지 다 하면서 우리 가족까지 부양하려면 힘들다고
말로만 사랑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맞벌이를 자처하셨던 분이야.
우리 부모님 세대는 교수 부인이 일하면 그 교수 엄청 능력 없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그 시대의 편견에도 아랑곳 않은거지.
아버지는 젊을 때에는 애 셋 키우면서 맞벌이까지 하는 어머니 안타깝기도 하고
하도 지랄맞은 인간들이 "교수님 집이 어려우시가봐요?" 하고 대놓고 뭐라고 해서
어머니 일 그만두라고 많이 싸우셨다더라.
그래도 우리 삼남매들 다 엄청 잘나진 않아도 나름 잘 컸다고 생각하거든.
나랑 여동생 중경외시 나와서 대학원은 각자 전공따라 우리나라 탑 국립대로 갔고
막내동생 아주대 나와서 지금 군바리인데 그래도 정도면
ㅆㅅㅌㅊ는 아니지만 ㅍㅌㅊ는 된다고 생각하거든.
부모님 두분 처음에는 너무나 가난했는데 그 뒷바라지들 다 하면서도 착실하고 검소하게 사셔서
이제 강남에 집도 두 채고, 돈 없어서 고생할 일도 없고, 노후 준비도 다 되어 있고 빚 한푼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같이 노력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거라며 항상 감사해하시지.
그런데 할매미가 우리 엄마 가슴에 대못박았다.
작은아버지네 아들이 고3인데 이번에 수능봐서 서울대 안정권 점수 나왔다고
할머니가 존내 흥분해서 어머니한테 전화걸어서 축하해주라면서 이랬대.
"야야 거 밖에서 돈번다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는것보다 집에 있는게 훨 낫다."
한마디로 우리 어머니한테 너는 밖에 돌아다니느라고 애(남동생)를 제대로 못봐서 아주대 가고
작은엄마는 집에서 전업주부 하니까 애가 수능을 잘 본거다... 이 말이지.
진짜 저게 말인지 똥인지.
여지껏 우리 어머니 맏며느리로서 안 한 도리 단 하나도 없고 평일에도 퇴근하고 아버지랑 제사 다녀오고
각종 경조사 때 중요한거 다 일 하고, 철없이 손벌리는 고모들과 친척들 뒷바라지는 물론
돌아가신 할아버지 병원비 다 우리집에서 대고 할머니 생활비도 우리집이 젤 많이 드린다.
고모들이랑 작은어머니 다 전업주부라 돈 없다고 ㅈㄹ 하면서.
그렇게 온 몸이 부숴져라 노력해서 지금 이 결실을 이뤄냈는데
남편 혼자 일하면 얼마나 힘들겠냐며 일부러 세상이 뭐라 손가락질해도 일하면서
행동으로 아버지를 도왔는데
ㅅㅂ 저걸 말이라고 우리 어머니 면전에 대고 하더란다.
어머니 결국 울고 말도 못하게 슬퍼하시고 너무 힘들어하셨다.
너무 반성이 되더라.
내가 만약 서울대 갔었으면 우리 어머니가 애들 제대로 못 키워서 저런거라는 소리를 들으실 일이 없었을텐데
결국 내가 모자라서 이렇게 어머니 마음에 피멍 드는 날이 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고 펑펑 울었다.
나는 그저 우리 부모님 말씀처럼 내 할일만 잘 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모님은 수십년 전의 가치관과 맞서 싸우고 거기에 공격을 받고 있었다는거지.
여동생한테 전화해서 이야기하는데도 눈물이 안 멈추고 여동생도 결국 울더라고.
동생도 자기가 못나서 열심히 산 어머니 아프게 해 드렸다고 그렇게 속상해하더라.
진짜 할머니한테 정떨어졌다.
사람이 충격 받아서 눈 돌아가서 공부한다는 소리가 남의 이야긴줄 알았는데 이젠 알겠다.
더러워서라도 내가 꼭 해외 명문대 가서 박사 하고 아버지 따라 교수 할거다.
다신 친척들 뒤에서 우리 어머니 욕하지 못하게 주둥이 틀어막아버릴거다.
ㅁㅈㅎ